# 1. 지난 5일 오전 10시. 마산 댓거리 월영광장에서 고성·통영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 올라갔다. 산복도로를 30m 정도 남겨두고, 오른편 작은 골목으로 꺾어 한 집에 들어섰다. 장애인 김모 씨 댁이다. 자원봉사자 6명이 반갑게 맞았다. 봉사자들은 방 두 칸과 부엌을 청소했다. 선반에는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고, 천장 곳곳에는 거미줄이 쳐져 있었다. 김 씨 식구들이 모두 몸이 불편해 집안 구석구석 청소하지 못한 까닭이다. 안 쓰는 물건들로 가득한 창고도 정리했다. 오인한(50·마산시 월영동) 씨는 아내와 딸과 함께 봉사에 나섰다. "그저 남을 돕는다는 게 좋은 일 같아서" 시작한 활동이다. 다른 이들은 모두 살림까지 챙기는 주부들이다. 중·고등학생 아이가 쉬는 토요일이 아니면 봉사 시간 맞추기도 어렵다.

낮 12시. 일하는 데 새참이 빠질 수 없다. 찐 옥수수, 수박, 포도 등을 내놓고 나눠 먹었다. 봉사자가 부족한 현실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예전엔 학생들도 봉사 활동을 많이 하더니 요즘엔 확 줄어든 것 같아요." "취업 경력에 도움되는 해외봉사는 인기라던데……."

김 씨의 어머니는 청소를 마치고 돌아가는 이들에게 인사했다. "정말 고맙소. 음료수 한 잔이라도 받아줘야 할 낀데……." 봉사자들은 3대째 정신장애가 있는 김 씨 집의 사연을 듣고선 "가슴이 팍 막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런 맘은 봉사를 끊을 수 없게 한다. 한 봉사자의 말도 인상에 남았다. "(봉사는) 지금 세상이 어떤지 보는 거잖아요. 한창 사춘기인 중학생 아이를 데리고 오니깐 참 좋았어요."

   
 
  마산지역자활센터 일꾼들이 새 벽지를 바르고 새 장판을 까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동욱 기자  
 
# 2. 지난달 27일 오후 마산시 월영동 주공아파트 박모(48) 씨의 집. 도배와 새 장판을 까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마산지역자활센터에서 나온 5명이 일하고 있었다. 돌돌 말린 도배지를 쫙쫙 펴고 풀을 발랐다. 깨진 바닥은 시멘트로 미장하고, 실리콘으로 작은 틈새도 메웠다. 작업하기 이전에는 쓰레기와 물건이 뒤섞여 집이 엉망이었다. 그러나 이번 작업으로 새집으로 탈바꿈했다. 이틀 동안 낡은 벽지, 장판, 방충망 등을 걷어내고, 새 걸로 바꿨다. 전등화장실 변기, 부엌 가스레인지타일도 마찬가지다. 56㎡ 남짓(17평) 공간의 칙칙하던 분위기도 벽지와 장판 색으로 화사하고 아늑해진 듯했다.

박 씨는 신장이 안 좋아 투석을 하고 있다. "깨끗하게 해주니깐 좋지요." 집 수리를 담당하는 마산지역자활센터 일꾼들. 다소 전문 기술이 필요한 일은 이들이 맡고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급여를 받는 이들로 도배기능사 시험을 준비하는 등 자신들의 일자리를 만들면서 남을 돕는 일도 함께하는 거였다. 현장 작업반장 김달규(57) 씨는 한 끼 사먹을 형편이 안 돼 식기를 들고 다니면서 밥을 해먹는다고 털어놓았다. 자신들도 어렵지만, 이러한 일을 반복하면서 수익이 생기고 훗날 기초생활보장 수급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고 했다.

집이 포괄하는 의미는 단순하지만은 않다. 특히,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에겐 더욱 그렇다. 집 밖으로 아예 못 나가거나 집안에서 주로 지내는 이들이다.

일상 생활을 집안에서 하는 이들에게 집은 곧 건강과 직결된 문제다. 먼지와 곰팡이 등이 생겨 깔끔하게 관리가 안 된 환경은 건강을 악화시킬 가능성도 커지게 한다. 아울러 집은 이웃과의 관계에 대한 문제다. 비장애인뿐만이 아니다. 집이 깨끗하지 못하면, 이웃과 멀어질 수도 있다.

마산시장애인복지관, 마산지역자활센터, 자원봉사자. 이들 3주체가 이런 현실을 깨고자 '2009년 저소득 재가 장애인 주거환경 개선 사업'을 8월 말 시작했다. 주거환경 개선 사업은 청소, 소독·방역을 기본으로 벽지와 장판 작업, 공간 개·보수 등을 포함한다. 올해 12월까지 총 50여 가구를 대상으로 진행된다. 이 가운데 10가구 이상은 집안 수리도 곁들인다.

마산시장애인복지관이 사업을 기획·지원하고 있다. 청소는 자원봉사자, 공사는 마산지역자활센터가 맡는다. 가족이 함께하는 자원봉사자가 많다. 활동은 청소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새 이웃을 만나고 인연을 맺는 장이 된다. 목욕이나 나들이를 함께하고, 밑반찬도 나눠 먹고, 이불이나 옷도 가져다준다. 한 달에 두 집 이상, 청소와 공사를 번갈아 한다. 시원산업, 포디자인 등 지역 업체들도 장판과 벽지를 제공하면서 도움을 주고 있다.

여태까지 노약자, 저소득계층을 위한 집 수리는 많았다. 하지만, 이번처럼 장애인만 대상으로 진행되는 건 처음이다. 더군다나 대부분 집 수리가 일시적이었던 반면에 이번 일은 정기적인 사업으로 만들어질 계획이다. 이 모든 게 불과 580만 원 남짓 비용으로 이뤄지고 있다.

마산시장애인복지관 재가복지팀 권상준 사회복지사는 "올해 한 번 하고 마칠 사업은 절대 아니다. 자원봉사자도 많이 모이고, 자치단체나 지역사회의 후원이 마련되는 등 더욱 조직화·체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작업하는 이도, 도움받는 이도 모두 어려운 사람들이다. 궁극적으로는 이번 사업이 함께 사는 지역 공동체를 추구하는 것"이라며 "첫 결실은 일의 가치를 인식하는 데서 찾고 싶다. 보호시설이 있다고 장애인 복지 문제가 풀리는 건 아니다. 맘 편히 머물 곳이 없는 사람들에게 전세 자금도 마련해주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문의 055-247-5194~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