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에에에에에엑!~" "끼야요오!"

복도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린다. 아이들은 일제히 "도영이다."라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작년, 2학년이 되면서 우리 반에 생긴 가장 큰 변화는 도영이로 인해 시작되었다. 우리 학교는 다른 학교와는 달리 장애인 교실인 '도움실'을 만들어서 장애인들도 비장애인과 더불어 일정 시간 수업을 이수하도록 하고 있다. 그 도움실 친구 중 한명인 도영이가 우리 반이 된 것이다.

도영이와 같은 반이 되기 전에는 솔직히 장애인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했었다. 그런데 도영이와 같이 지내다 보니 매일 매일이 충격 그 자체였다.

도영이는 우리와는 너무나 달랐다. 의사소통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수업시간에 돌아다니는 것도, 소리를 지르거나 교실에서 방방 뛰는 것을 막는 것 또한 당연히 불가능했다. 학기 초에는 50분 내내 교실을 휘젓고 다녀서 수업을 할 수 없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더 답답했던 것은 도영이를 대하는 선생님들의 태도였다. 특히 결혼해서 자녀를 두신 선생님들께서는 도영이에게 강한 제재를 내리지 않으셨다. 그저 "도영아, 자리 앉아야지."라고 말씀하시거나 아니면 무시하고 수업을 계속 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때에는 선생님도, 도영이 부모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도영이 한 명 때문에 반 전체학생 35명 모두가 피해를 입는 그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친구들도 나처럼 느끼는 듯 했다. 도영이가 수업시간에 괴성을 지를 때 마다 아이들의 짜증도 극에 달했는지 불평불만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 김도영, 쟤는 만날 왜 저래?"

"아 짜증나."

"야! 가만히 있지 못해?"

그러면 도영이는 눈치를 챘는지 잠시 움츠러들었다가 옆에 있는 친구에게 가서 안긴다. 도영이는 마음에 드는 친구에게 "엄마"라고 부르며 계속 따라다닌다. 그래서 도영이에겐 엄마가 많다. 신기하게도 도영이가 "엄마"라고 부르면 그 애들은 금세 화가 풀렸는지 "그래그래 우리 도영이 조용히 해야지."하며 등을 토닥여 준다. 그러면 도영이도 친구의 사랑을 느꼈는지 해죽해죽 웃으며 가슴에 안긴다. 하지만 도영이를 안아주는 엄마들의 표정이 마냥 밝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짜증을 내는 친구도 있었다.

"내가 왜 니 엄마냐고!!!!"

그러던 어느 날. 제비뽑기를 통해서 자리를 뽑았다.

'제발 도영이와 짝지 되지 않도록 해주세요.'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왜냐하면 도영이 짝지가 되면 도영이의 수호천사가 되어 돌아다니는 도영이를 자리에 앉히고, 급식실에도 손잡고 가야하고, 배식 및 식판 정리까지 다 해주어야 하는 학급규칙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뿔싸. 내 번호는 35번. 도영이는 36번. 내가 도영이 수호천사가 된 것이다. 막막했다. 더군다나 그 때는 도영이를 안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학기 초였고, 도영이가 마구 휘두르는 주먹도 무섭고 싫을 때였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며 그래도 도영이가 우리보다 일찍 하교하는 것을 위안 삼으며 도영이의 옆자리에 가서 앉았다. 도영이는 내가 옆에 다가가자 "엄마!"하며 내 품에 안겼다. 나도 엉겁결에 도영이를 안고 등을 두드려 주었다. 그러자 정말로 내가 도영이의 엄마가 된 것 같은 책임감이 느껴졌다. 짝이 된 초기에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면 도영이는 귀신처럼 알아채고 내게 묻는다.

"바븐? (밥은?)"

나는 귓속말로

"밥은 두 시간만 있다가 먹자~."

하고 대답했다. 대답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도영이는 또 내게 묻는다.

"바븐?"

"1교시만 지나면 먹으러 갈 거야."

엄지손가락을 내밀어 가르쳐 준다.

"바븐?"

"도영아, 조용히 하자! 친구들 공부하잖아. 시계 긴 바늘이 두 번 돌면 가자!"

매번 이런 식의 대화가 오갔다. 그러나 나는 성인군자가 아니었다. 계속되는 도영이의 물음에 어느 날 그만 화를 내고 말았다.

"아, 김도영. 조용히 해라. 김도영 니가 계속 떠들면 친구들이 도영이 싫어한다고."

만약 도영이가 나와 같은 비장애인이었다면 내가 화를 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분명히 토라져서 나랑 말도 안 하려고 했을 거고, 크게 싸움이 났을 수도 있다. 그런데 도영이는 그렇지 않았다. 화를 내고 미안한 마음으로 도영이를 쳐다보면 도영이는 여전히 나를 보고 웃어 주었다. 처음에는 '도영이가 내 말을 못 알아들어서 그냥 웃는가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변함없는 도영이의 미소를 보며 나는 '아. 내가 잘못했구나.' 라는 죄책감이 들었다. '내가 조금 더 참을 수도 있었는데 너무 성급하게 화를 내서 도영이가 놀라지는 않았을까?' 걱정도 됐다.

시간이 지나자 도영이는 차츰차츰 내 말을 잘 들어주었다. 자리에 앉으라고 말을 하면 바로 자리에 가서 앉고, 손에 있는 쓰레기를 버리고 오라면 척척 버리고 왔다. 그리고 나에게 몇 번이고 반복해서 물어보는 일은 현저히 줄어들었고, 수업시간에 자기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도영이의 가방에서 공책을 꺼내 단어를 써주면 도영이는 삐뚤빼뚤 따라 썼다. 그렇게 도영이는 차차 수업에 적응을 해 나갔다.

그런데 도영이가 아파서 한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도영이가 없어서 조용하겠거니 하며 좋아했는데 결석일수가 늘어나자 친구들이 하나 둘씩 도영이를 걱정하며 그리워했다. 나 또한 도영이의 자리가 비어 있는 게 허전했다.

늘 우리에게 웃음을 선물하고, 학업에 지친 우리들에게 안겨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던 도영이. 늘 아기처럼 우리에게 '엄마'라고 부르며 순수한 질문을 해대던 도영이. 도영이는 단순한 장애인이 아니라, 경쟁에 지쳐 영혼이 황폐해져 가고 신경이 날카로운 우리들에게 순수함과 즐거움, 그리고 사랑과 인내를 가르쳐 주는 천사이자 최고의 선생님이 아니었을까?

일주일 후 도영이가 짠하고 나타났을 때, 친구들은 너도나도 도영이의 엄마가 되어 끊임없는 질문에 인상 쓰지 않고 대답해 주거나 제재를 가하며 도영이를 안아주며 즐거워한다. 도영이로 인해 우리 반에는 웃음과 사랑이 그칠 새가 없다.

/김효원(창원 명지여고 3년)